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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 예선전에 한국이 빠진 이유

남화영 기자2023.02.16 오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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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US여자오픈 한국 예선전에서 합격한 이정현(왼쪽)과 주수빈. [사진= KGA]

미국골프협회(USGA)가 올해 US여자오픈을 위한 예선전 개최 골프장에서 10년만에 한국을 제외했다.

USGA는 오는 7월 6일부터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를 위해 5월 9일부터 6월 7일까지 미국 23곳의 골프장과 해외는 캐나다, 일본, 벨기에 3곳에서 36홀 예선전을 연다고 발표했다.

USGA는 올해 한국을 제외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대한골프협회(KGA)는 "한국 예선전에 수준 높은 프로 선수 참여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안이다. 한국 선수 중에 일부는 ‘US여자오픈을 굳이 출전하지 않아도 되는 대회’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US여자오픈에 출전한 한국 선수는 총 22명이었다. 대부분은 미국프로골프(LPGA)투어를 뛰는 선수들이었고, 한국에서 열린 예선전으로 출전한 선수는 아마추어 주수빈과 국가상비군 이정현, 김민솔이었다.

USGA가 대회 비용을 지불하는 한국 예선전 [사진=USGA]

US여자오픈 출전권 항목을 보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는 상금 랭킹 5명까지 출전할 수 있고, 두 번에 걸쳐 롤렉스 랭킹 세계 톱 75위 이내 선수에 출전권을 준다.

지난해는 예선전 없이도 박민지, 박현경, 임희정, 이다연, 장하나, 이소미, 유해란, 윤이나, 이가영 등이 세계랭킹으로 US여자오픈 출전권을 받았다. 그런데도 6월 2~5일간 노스캐롤라이나의 파인니들스에서 열린 US오픈에 출전한 선수는 유해란, 이소미 단 두 명이었다.

나머지 7명은 US여자오픈 기간에 국내 KLPGA 대회를 뛰느라 바빴다. 5월 마지막 주에 E1채리티오픈이 열렸고, US여자오픈 주간에 베어즈베스트청라에서 롯데오픈이 열려 성유진이 첫승을 했다. 바로 다음주에는 강원도 설해원에서 셀트리온퀸즈마스터즈가 열려 박민지가 시즌 2승을 올렸다.

총 상금만 비교해도 US여자오픈은 1천만 달러(128억원)였다. 롯데오픈 8억, 셀트리온마스터즈는 10억이었으니 출전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누구 말처럼 헝그리 정신이나 절박함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앞섰던 것 같다.

출전하지 않은 한 선수는 “US여자오픈을 출전하면 그 주 대회만 빠지는 게 아니라 스케줄과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하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국내 대회들 출전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 선수 관계자는 “미국 코스 잔디와 국내 잔디와 코스 환경이 달라서 돌아와서 국내 투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도 푸념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예선전은 역대 최다 인원이 신청했다.

KLPGA는 해외 출전 대회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국내 대회 시즌과 겹치는 해외 대회는 3개까지만 허락받고 가라’고 한다. KLPGA가 인기를 얻고 대회가 많아지면서 겹치는 해외 투어 출전 제한 조항은 국내 선수들을 해외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족쇄로 작용한다.

해외 메이저 대회를 안 나가는 건 선수들의 현실적인 선택이고 판단이겠지만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자질 있는 선수가 해외 큰 무대에 도전하지 않는 건 스포츠 정신이 부족한 변명처럼 여겨진다.

KLPGA의 대회수가 많아지고 상금액이 오른다고 경쟁력도 커지는 걸까? 국내 대회는 절반 가까이 3라운드 54홀 대회지만 LPGA투어는 대부분이 4라운드 72홀 규모 대회다. 더구나 올해 KLPGA의 한 대회는 4라운드가 3라운드로 오히려 줄었다. 국내 선수들은 또박또박 드라이버 샷을 비슷한 거리로 치지만 LPGA투어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투어 운영 시스템의 변화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수도 있다. 이웃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는 해외 메이저 대회에 나갈 때는 2주간 이상의 출전도 너그럽게 허용한다. 또한 해외 메이저에는 우승 포인트를 자국 대회보다 4배 이상 높게 배정해서 해외 메이저 출전을 독려한다. 유카 사소, 하타오카 나사, 후루에 아야카 등 LPGA투어에서 일본 선수들이 최근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자국 투어의 이 같은 정책 변화 때문이다.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우리 선수들도 그때는 치열했다. US여자오픈 예선전이 2014년 충남 천안 우정힐스 골프장에서 처음 열렸을 때 말이다. 당시 USGA 설명으로는 ‘US여자오픈 예선전 출전을 위해 미국을 찾는 선수들의 과도한 비용 지출과 시간 낭비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아시아 우수 선수 발굴을 위해 US여자오픈의 국제 예선을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골프장 임대료와 관련 경비를 모두 USGA가 부담했고, 선수들은 저렴하게 최고의 무대를 뛰어볼 찬스를 누렸다. 당시 한국 선수들에게 US여자오픈은 인생의 꿈이었다. 1998년 박세리와 2005년 김주연에 이어 박인비(2008, 2013년), 지은희(2009), 유소연(2011), 최나연(2012) 등이 성공 스토리를 이어갔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디렉터까지 파견했던 예선전은 수년간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당시 일본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활동하던 배희경은 일본, 한국 모두의 예선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KLPGA투어 5승의 이정은과 3승의 이민영도 예선전을 치렀다. 하루 36홀의 강행군이었지만 한국에서 136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미국을 포함한 예선전 중에 3번째로 많은 선수가 응모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KLPGA의 우수한 프로 선수들이 US여자오픈 예선전에 나오지 않으면서 상황이 변했다. 코로나19를 지나 3년만에 인천 드림파크에서 열린 2022년 예선전은 심각한 정도였다. 프로 10명에 아마추어 61명을 합쳐 고작 71명만이 신청했다. 인원을 채우기에 급급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송 해설을 하던 37세 배경은이 최고령 선수로 출전했다.

모든 경비를 지원하는 USGA로서는 더 이상 예선전을 열어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을 법하다. 예선전 없어도 출전 티켓을 가진 KLPGA선수 중에 다수가 출전하지 않는 상황부터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US여자오픈 우승한 김주연 [사진=USGA]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US여자오픈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선망하는 대회였다. 제31회 대회인 1976년부터 예선전을 시작했다. 이후 주니어 선수가 아닌 일반 아마추어 선수도 핸디캡 2.4이내면 출전하도록 했다.

그렇게 문호를 열어 2004년 대회에는 예선전 신청자가 1097명으로 네 자릿수를 넘겼다. 역대 최다 인원이 신청한 건 지난해의 1874명이었다. 그렇게 예선전을 치른 선수 중에 22명이 36홀 컷을 통과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은 예선전 신청자는 반토막이 났고, 출전 티켓을 가진 선수들도 대부분 반납했다.

이 대회는 예선전에서부터 뛴 선수가 우승한 감동 스토리를 두 번 썼다. 2003년 24세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생 힐러리 런키가 1차 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월요일 연장전 18홀 라운드에서 안젤라 스탠포드를 꺾고 우승했다.

‘버디킴’이란 별명으로 불린 김주연도 2005년 최종 예선전을 거쳐 우승했다. 덴버 체리힐스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72번째 홀에서 그는 그린 옆 벙커 샷을 그대로 집어넣고서 극적으로 우승했다.

그런데 잠깐. 현재 국가대표팀 여자 코치인 김주연은 US여자오픈 예선전이 한국에서 중단된 이 상황을 제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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