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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건] 오거스타내셔널을 스크린 골프로?

남화영 기자2024.04.12 오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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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내셔널 코스맵 [사진=마스터스]

내게 엄청난 사업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계속 궁리만 하다가 이제야 털어놓는다.

지난 2월에 시뮬레이션골프업체 골프존에서 ‘법원에서 골프 코스에 저작권이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내 아이디어는 거기서 나왔다. 이 참에 이번 주 열리는 마스터스의 오거스타내셔널을 복제해서 스크린 골프로 만드는 것이다.

당시 보도자료는 골프설계에 저작권이 없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골프코스 설계에 골프 경기 규칙,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야 하고 이용객들의 편의성, 안전성 및 골프장 운영의 용이성 등과 같은 기능적 목적을 달성해야 하며, 제한된 지형에 각 홀을 배치해야 하므로, 골프코스는 건축저작물로서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모양이지만 현장에서 각 홀이 얼마나 다른가 보여주는 이미지 [자료=코스설계회사 오렌지엔지니어링]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골프장 시설물(클럽하우스, 진입 도로, 연습장 등)과 골프 코스 개별 홀의 배치는 대부분 산악 지형에 건설되는 우리나라 골프장의 위치와 골프장이 조성되는 부지의 지형에 의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저작권의 근거인 창의성을 대폭 축소하는 표현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거스타내셔널은 원래 과수원이었던 산악 지형에 만들었으니 창의성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땅이다. 누가 설계해도 파3, 4, 5로 구성된 홀은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1932년에 개장한 이래 대부분의 홀은 예닐곱번씩 기능적인 필요로 바뀌었다. 애초 전장 6670야드에서 올해는 7555야드로 열리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걸 본따 ‘골프존마스터스’를 연다면 대박 아닌가? 한국같은 스크린골프 기술력이 뛰어난 나라에 못할 것이 뭔가? 한국 법원이 논리를 뒷바침하는 것 아닐까? 골프존의 보도자료 다음 내용은 이 판결의 의미를 확장해 황금빛 청사진을 그린다.

골프존과의 저작권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송호 설계가 [사진=클럽하우스 방송 이미지]

"법원은 1심에서 승소한 설계회사들의 권리를 부정하고 이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골프존은 이번 판결로 스크린골프 산업이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향후 ‘메타버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활용한 다른 산업에서도 균형점 있는 저작권 판단 기준의 배경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JTBC골프 시사토크프로그램 ‘클럽하우스’에서 코스 저작권과 관련해 골프존의 시뮬레이션 골프장을 살폈다. 당시 미군의 사드 배치로 골프장을 패쇄했던 ‘롯데스카이힐 성주’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나마 강원도의 모 그룹 대표 코스는 골프장의 계속된 요구에 따라 방송 이후에는 삭제된 듯하다.

2심 소송을 이겼으니 설계자의 저작권은 무시할 정도라고 여기는 지 모르겠다. 지금도 운영되는 제주도의 세인트포(현재 골프장은 아난티클럽제주) 설계가는 소송 당사자인 송호골프디자인 그룹의 송호 대표다. 그는 “세인트포나 내장산CC는 법적으로도 저작권이 내게 있는데 골프존이 허락없이 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골프장 코스맵. 설계가는 등고선 표시까지 세밀하게 코스를 창조해낸다 [자료=송호]

오거스타내셔널 설계가는 알리스터 매킨지이고 세계 100대 코스에 든다. 그리고 <골프매거진>의 ‘세계 100대 코스’나 <골프다이제스트>에서 선정하는 ‘미국 100대 코스’, ‘미국 제외 100대 코스’에서도 각 골프장은 다 누가 설계했는지 저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코스들 중에는 매킨지 코스들끼리 연대하는 세미나 모임도 갖는다.

설계 저작권을 외치는 설계회사 오렌지엔지니어링이나 송 대표의 코스도 마음대로 쓰는데 세상을 떠난 지 수십년 된 매킨지 코스라고 못 쓸 게 뭐 있나 싶다. 아예 오거스타내셔널 뿐만 아니라 ‘골프존 세계100대코스’를 만들어 스크린 골프 대전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골퍼들이 해외에 비싼 돈 주고 안 나가도 최고의 코스를 다 칠 수 있다.

2심 판결에 따르자면 세계 100대 코스의 설계가는 주어진 자연에 파3, 파4, 파5를 그었을 뿐이다. 홀마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휜다. 홀 모양은 기능적인 모양이니 창의력이 생길 여지가 극히 제한된다는 논리다. 골프는 18홀이고 여기서 티, 페어웨이, 러프, 그린이 전부인데 뭐가 다른가를 좋은 로펌을 구해 주장하면 된다.

저작권 허락을 받지 않은 골프존에 이용되는 송 대표의 내장산, 세인트포 코스 [사진=골프존]

다만, 지난 2020년 3월26일의 대법원 판결만 피해가면 된다. 저작권 개념에 대해서 대법원은 당시 ‘골프 코스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하고, 저작권자는 골프장을 조성한 건축주가 아니라 설계자이며, 골프존이 제작한 스크린골프용 가상코스는 실제 골프장과 이미지가 상당히 유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사소하게 주의할 게 있다면 오거스타내셔널은 세계 최고의 로펌을 두고 있다는 정도다. 하지만 2심 법원을 무시하면 안된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그들은 매킨지가 누구인지 모를 수 있지만 말이다.

골프홀은 파3, 4, 5의 기능적인 홀이 18개 연결된 장소일 뿐이다. 창작은 피카소 미술 작품에서나 있는 것. 골프존에게 대박 아이디어를 선듯 제공하는 나는 얼마나 자비로운지 어깨가 괜히 으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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