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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앓는 부인 위해 대회 나온 페리

남화영 기자2023.04.25 오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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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투어의 케니 페리 [사진=PGA투어]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10승의 베테랑 케니 페리(미국)가 치매를 앓는 부인과 함께 투어 생활을 병행하려는 모험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62세의 페리는 미국 텍사스 어빙의 라스콜리나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인바이티드셀러브리티클래식(총상금 200만 달러)에서 1년여 만에 출전했다. 24일 3라운드에서 1오버파 72타를 쳐서 공동 40위(1언더파)로 마무리했다.

순위는 다소 하락했지만 페리의 표정은 홀가분한 듯 편했다. 그는 50세 이상이 겨루는 챔피언스투어에서 186경기에 출전해 10승, 2위도 10번 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PGA투어도 14승을 쌓은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다 돌연 잠적하고 1년여 만에 대회에 다시 나온 건 41년간을 잉꼬 부부로 사이좋게 지내는 부인 샌디 페리의 알츠하이머 때문이다. 2021년 시즌을 마친 뒤로 1년이 지나 출전하는 그가 대회 전 인터뷰에서의 간병기는 감동적이었다.

페리가 시니어오픈 우승했을 때 샌디가 축하하고 있다. [사진=PGA투어]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내가 있는 나는 간병인”이라면서 "2년 전에 시니어오픈 대회장에서 그녀는 다른 18홀에서 헤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2021년 11월 애리조나에서 찰스 슈왑컵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스에서 남편을 따라다니던 부인이 다른 코스로 갔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즉시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행복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페리는 투어를 쉬면서 내슈빌에 있는 모든 의사를 찾았지만 치료법이 없으며 현재 목표는 그녀의 치매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나오기를 바란다.

웨스턴 캔터키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부부는 1982년에 결혼했다. 페리가 우승하는 순간을 함께 기뻐했고, 투어를 다녔으며, 자녀 들뿐 아니라 이제는 손주가 9명에 이른다. 페리는 최근 다시 투어에 나와서 예전처럼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샌디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게 복잡하지 않은 대회 일정을 짜서 함께 투어를 다닐 계획을 짜고 있다.

향후 페리와 샌디는 휴스턴에서 열리는 인버시티 인비테이셔널과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 열리는 지역 경기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우리는 산책을 하고, 공원에 나가고, 쇼핑센터에도 간다. 우리 인생은 불평할 수 없다. 훌륭한 아이들, 손자들이 있다. 나는 샌디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돌봐줘야 한다."

페리는 “언젠가 이보다 상태가 나빠지는 날이 올까 두렵지만, 그렇게까지 미리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인터뷰를 맺었다.



페리의 노력과 관련해서 최근 나온 신간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세개의소원 출간, 성기옥 유숙경 옮김)라는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살아가는 1인칭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사토 마사히코라는 51세 평범한 중년 남성이 치매로 진단받은 뒤 혼자 살아온 내용을 담은 자전 에세이다.

2014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10여년 뒤인 올 3월에 한국에 소개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과 일상을 기록하고 ‘일본 치매 워킹그룹’을 만들어 공동 대표로 활동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강연을 했으며, 세월이 꽤 흘러 6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본처럼 한국 역시 초고령사회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노년 세대가 나이듦과 함께 가장 걱정하는 것이 치매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치매가 주변에 민폐이고 사회적인 부담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공존을 모색하고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저자의 치매 발병 이후 생활에 대한 촘촘한 기록은 치매를 떠나 자신의 삶을 향한 존중과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대처,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변함없는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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