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챔피언 조보다 2시간 여 일찍 라운드를 시작한 유소연(27·메디힐)은 경기를 마친 뒤 골프장에 발이 묶였다. LPGA로부터 “만약에 생길 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기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 162점으로 1위였던 유소연은 이번 대회에서는 어깨 부상으로 5언더파 공동 30위에 머물러 톱 10까지만 주어지는 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다. 최종일에 5점 차 3위 박성현(24·하나금융그룹), 15점 차 4위 렉시 톰슨(22·미국)이 우승 경쟁을 하면서 수상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아 기적 같은 반전 드라마가 일어났다. 드라마는 17번 홀까지 14언더파로 1타 차 선두였던 톰슨이 18번 홀(파4)에서 50cm짜리 파 퍼트를 놓치면서 시작됐다. 50cm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톰슨의 우승 확률을 90% 이상이라고 여겼던 현장은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에서 경기한 에리야 쭈타누깐(22·태국)은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16번 홀까지 13언더파였던 쭈타누깐은 17번 홀(파5) 버디에 이어 18번 홀(파4)에서 5m 버디를 성공시키며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장을 대비했던 톰슨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유소연과 박성현도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유소연은 이번 대회에서 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지만 공동 2위에 오른 톰슨이 우승 포인트 30점이 아닌 2위 포인트 12점을 추가하는데 그치면서 1위 자리를 지켰다. 12언더파 공동 6위로 경기를 마친 박성현 역시 올해의 선수 포인트 5점을 추가하면서 유소연과 동점이 됐다. 1966년에 올해의 선수상이 만들어진 뒤 두 명의 선수가 공동 수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선수로는 2013년에 상을 수상한 박인비(29·KB금융그룹)에 이어 두 번째다.

빈손으로 돌아갈 뻔 했던 유소연은 “이번 주에 성적이 좋지 않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올해 목표였던 상을 수상해 기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놀랍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지만 3,4라운드 침묵으로 신인상와 상금랭킹 1위로 시즌을 마칠 뻔 했던 박성현도 뜻밖의 수상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성현은 “물론 너무 기쁘지만 아직 안 믿겨진다. 실감이 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신인이 데뷔 해에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한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즈(미국) 이후 39년 만이며 LPGA투어 역사상 두 번째다.

50cm 퍼트 악몽의 주인공이 된 톰슨은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과 100만달러 보너스가 걸린 레이스 투 CME글로브를 차지하며 위안을 삼았다. 펑샨샨(28·중국)은 7언더파 공동 21위로 부진했지만 이번 주 세계랭킹에서 8,43점을 기록, 박성현(8.39점)에 0.04점 앞서 랭킹 1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네이플스(미 플로리다주)=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