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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인비’의 골프와 행복

신봉근 기자2018.01.15 오전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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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중혁, stylist 김남미, hair & makeup 차홍 아르더]

모든 걸 다 이룬 ‘리빙 레전드’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박인비를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명예의 전당 입회,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부상으로 잠시 쉼표를 찍었던 박인비는 복귀 후 바로 우승을 차지하며 여왕다운 면모를 보였다. 모든 걸 이룬 박인비에게선 여유와 단단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박인비는 ‘내려놓았다’, ‘즐긴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모든 걸 이뤄낸 후에도 흔들림 없이 다시 클럽을 잡고 길을 나서는 박인비가 얼마나 대단한 ‘여왕’인지 말이다.



2016 시즌에 부상이 있었는데 2017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2017시즌을 점수로 매긴다면?

예전보다 기준치가 내려갔다(웃음). 그래서 8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게 골프를 했다는 점과 올림픽 이후 공백기에도 빨리 우승을 했다는 점을 높게 쳐주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물론 HSBC챔피언스다. 가장 기억날 만한 경기력이었고, 만족할 만한 퍼트감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 주가 기억에 남는다. 또 마지막 공식 대회였던 KLPGA투어 KB금융 스타챔피언십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큰 기대를 안 하고 나선 대회였는데 마지막 날 바람도 많이 불고 어려운 상황에서 만족할 만한 라운드를 했다.

아쉬운 대회는?

가물가물하다(웃음). 있긴 있었는데 우승을 놓치거나 했던 대회는 없어서 크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옛날보다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올림픽을 치르고 또 올림픽 전에 부상을 입었던 것이 내려놓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전까지는 앞으로 전진만 했다. 넘어지면 또 곧바로 일어나서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시즌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조급하게 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가자’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허리 상태는 어떤가?

3~4개월 동안 많은 대회에 참여하지 않아서 무리는 전혀 없다. 몸 상태는 아주 좋은 편이다. 최근 2년간은 스케줄을 여유롭게 하고 있다. 큰 부상으로 오래 쉬고 싶지 않다.

지난 가을 이후 쉬면서 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집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까 일상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국내에 와도 곧 다시 나가야 하는 스케줄이어서 장을 볼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장봐서 요리도 하고, 집에서 TV를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홈쇼핑에도 재미가 들렸다(웃음). 집에 택배가 매일매일 온다(웃음).

벌써 결혼 5년 차인데 집에 있으면서 남편과 소소한 재미가 남다를 것 같다.

리오(애견 이름)하고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못 봤던 분들도 뵙고, 은퇴했던 언니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은퇴 후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했는지?

특별한 건 없다. 해보고 싶었던 것이 그냥 휴식이고 일상생활을 사는 거였다. 별것도 아닌데 나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즐기고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계절이 바뀌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국내에 있으면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넘어가는 걸 보게 됐다. 남들이 생각할 때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이런 일상을 그동안 즐기지 못했다.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게 너무 행복했다.



리우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입양한 애견 ‘리오’가 많이 컸다.

대형견이고 빨리 성장하는 아이이다 보니까 다들 보면 놀란다. 어렸을 때부터 큰 개를 키워보고 싶었고, 강아지를 워낙 좋아했다. 삶의 힐링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애교가 많은 듯하면서도 도도하다(웃음). 내 아들이라 그런지 성격이 강한 면도 있다. 그래도 너무 사랑스럽다.

애견 말고 진짜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나?
물론 계획이 있다. 남편과 언제가 가장 좋은 시기일지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조만간은 계획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편도 마흔 가까이 돼가고 나도 서른이 넘어가니까 주변에서 이제 ‘노산’이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그래서 슬슬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만 서른 살이다. 20대에서 30대가 됐는데 느낌이 어떤가?

어렸을 때 골프 선수를 시작하면서 ‘20대에는 골프 선수로서 내 몸을 불사르고 30대에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20대가 벌써 훌쩍 지나가버렸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30대는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20대에 누렸던 삶보다는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삶의 스타트인 것 같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신봉근 기자 shin.bongge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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