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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US여자오픈 우승, 그 숨겨진 뒷이야기

김두용 기자2017.07.26 오전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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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이 US여자오픈 우승 후 자신의 이름을 우승컵에 새겨준 USGA 장인 더그 리처드슨과 기념 촬영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김두용 기자]


사진 속 박성현(KEB하나은행)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낯선 노인의 이름은 미국골프협회(USGA)의 장인 더그 리처드슨(미국)이다. 그는 박성현이 번쩍 들어 올렸던 US여자오픈의 우승 트로피에 박성현의 이름 석 자를 직접 새긴 장인이다. 박성현은 자신의 이름이 우승컵에 더해지는 장면을 15분간 숨죽이며 지켜봤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박세리 등 전설들의 이름 옆에 박성현의 이름도 자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리처드슨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렇게 수작업으로 금속을 깎아내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벗겨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며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35년 동안 USGA 우승자들의 이름을 새기는 일을 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 더스틴 존슨, 조던 스피스의 이름도 직접 넣었다”고 소개했다.

리처드슨은 US여자오픈을 정복했던 한국 선수들의 이름 새기는 작업 역시 모두 도맡았다. 1998년 박세리부터 시작해 김주연(2005), 박인비(2008, 2013), 지은희(2009), 유소연(2011), 최나연(2012), 전인지(2015), 박성현(2017)의 이름은 모두 리처드슨의 손에서 탄생했다. USGA 관계자는 “이런 작업을 직접 지켜본 건 한국 선수들 중 박성현이 처음”이라며 특별한 순간임을 재차 강조했다. 박성현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줄곧 신기하게 지켜봤다. 그는 “직접 이름이 새겨지는 작업을 목격하니 기분이 묘했다. 전설들 옆에 내 이름을 넣을 수 있어서 영광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실 우승컵에 이름이 새겨지는 작업은 늦어졌다. 시상식과 공식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 진행됐다. 그래서 박성현이 그린 옆 포토존에서 우승컵을 들고 찍었던 사진들에는 아직 박성현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박성현이 자신의 이름이 있는 우승 트로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시점은 경기가 끝난 2시간 뒤였다.

우승컵의 이름 새김 작업 이후 박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바로 ‘사인 세리머니’였다. 이제
본인이 직접 이름을 새길 차례였다. 우승자들은 그해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깃발과 모자 등에 수많은 사인을 한다. 한국에서 박성현도 수없이 경험했던 절차였다. 박성현은 자신의 기다리고 있는 깃발과 각종 기념품을 쓱 훑어보더니 “한국보다 더 하네”라고 짧게 내뱉었다. 끝이 없는 사인 세리머니가 20여 분간 이어졌지만 박성현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끝까지 정성껏 새겼다.



2017년 US여자오픈은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렸다. 골프장 소유주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간이나 머물며 관전해 큰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박성현의 우승에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박성현은 “18번 홀 플레이를 끝나고 스코어박스로 걸어가다 트럼프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다. 저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는데 기분이 짜릿했고, 영광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성현의 뜨거운 눈물도 화제였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박성현은 어머니와 함께 그 동안 참아 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박성현뿐 아니라 어머니 이금자씨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동안 울었다. 방송 중계사인 폭스TV에 공식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박성현은 인터뷰장 입구에 들어서기 전 눈물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박성현은 “원래 사이가 좋고 다투는 일도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좀 부딪혔다. 어머니가 잔소리가 없는 편인데 괜히 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미국에 오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저는 괜찮은데 어머니는 음식이 맞지 않아 잘 못 드신다. 딸로서 그런 부분들이 마음 속에 계속 걸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성현은 “어머니가 ‘잘했고 수고했다’는 말 다음에 ‘미안하다’고 애기하셔서 눈물이 났다. 저도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며 애틋한 감정을 표현했다.

우승 후 모든 일정을 소화하자 밖은 이미 칠흙 같은 어둠으로 덮였다. 현지 시간으로 9시가 훌쩍 넘어서 모든 일정이 끝났다. 하지만 우승 식장 밖에는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성현의 ‘사부’ 박성주 코치였다. 박 코치는 US여자오픈에 맞춰 지인을 만나고 대회를 구경할 겸해서 베드민스터를 찾았다. 특별한 레슨을 해주기 위해 온 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박성현과 박성주 코치. [사진=김두용 기자]

박성현은 미국 진출 선언 후 브라이언 모그(미국) 코치와 호흡을 맞췄다. 잠깐 잠깐 레슨을 받았을 뿐 전담 스윙코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박 코치는 부담없이 곁에서 박성현의 연습 장면을
지켜봤다. 특별한 조언은 없었지만 그저 옆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박성현에게 큰 힘이 됐다. 박성현은 “박성주 프로님이 옆에 있어서 든든하고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 생긴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박 프로님과 함께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박성현은 당초 US여자오픈 다음 대회가 열리는 오하이오주로 곧바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승 일정으로 시간이 지체돼 비행 일정을 다음 날로 미뤄야 했다. 숙소로 돌아간 뒤 어머니, 박성주 코치와 함께 조촐한 우승 축하 파티를 했다. 사실 박성현은 고대했던 LPGA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지만 세리머니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박성현이 챔피언 조 바로 앞 조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경기 결과를 기다려야 했던 부분도 있었다.

박성현은 “사실 캐디와 우승을 하면 어떤 세리머니를 할까 여러 가지를 얘기했다. 조던 스피스가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때 벙커샷 버디 성공 후 캐디와 했던 세리머니를 할까라는 즐거운 상상들을 했다”며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박성현은 항상 그랬듯이 가족 같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우승 뒷이야기를 하며 환상적인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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